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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은 ‘환율’ 1400원대…한국 유통업계 미래는?

식품에서 패션까지, 내수 수출 실적 ‘희비 엇갈려

1400원대 원·달러 환율이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되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전망이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웃돌면서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급등의 발단은 정치적 배경 때문이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연 기자 회견에서 비상계엄을 선언한 직후인 11시20분, 1400원 초반이던 원·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1425원을 넘어섰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환율이 20원 넘게 치솟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불과 며칠 전인 11월에는 1300원대였다는 걸 감안하면 환율이 무려 100원 이상 오른 거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마지막 거래가 열린 12월 30일 환율은 하루 새 5원 뛴 1472.5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쳤다. 연말 기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7년(1695원)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이때 환율은 5거래일 연속 상승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3일(1483.5원) 이후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이후 환율이 치솟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지만 환율은 안정화되지 못했다.

해가 바뀌었음에도 환율은 1400원 아래로 떨어지는 일 없이, 1400원 중반대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다. 환율이 이렇게 장기간 1400원대를 보인 건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미국이 고강도 긴축에 나섰던 2022년 등 세번 뿐이다.

환율이 고공 행진을 이어가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여파는 크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더욱 타격이 크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지난 9월 발표한 ‘중소기업 환율 리스크 분석 연구’에 따르면, 제조 중소기업의 영업이익에서 환차손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2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원·달러 환율이 1% 상승할 때 환차손이 0.36%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환율 리스크에 시달리는 것은 한국 리테일 기업도 마찬가지다. 먹고 마시고 입는, 우리 일상 전반에 꼭 필요한 업종인데, 고환율의 여파가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게 국내 뷰티 업계다. 최근 K-뷰티 열풍을 주도하면서 수출이 늘고 있는 뷰티 업체가 특히 환율 상승의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현재 K-뷰티는 전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4년 12월 및 연간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화장품 수출액은 102억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특히 미국에서 한국 화장품 인기가 높아지면서 프랑스를 누르고 미국 시장 내 화장품 점유율 1위 자리를 꿰찼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올해 K-뷰티 수출액이 전년 대비 3~10%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고환율 리스크의 여파를 뷰티업계가 받고 있다.

환율 고공행진, 경제 여파 커져…중소기업들 더 큰 타격으로
국내 제조 후 직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의 경우, 원화로 제조하고 달러로 값을 받기 때문에 수혜를 입을 수 있지만, OEM·ODM에 제조를 맡기는 중소업체들의 상황은 다르다.

최근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에이블씨엔씨 등 국내 브랜드사를 비롯해 해외 화장품 브랜드들이 일제히 제품 가격을 인상한 것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지는 환율 상승과 각종 비용의 영향이 크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최근 해외에서 K-뷰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인지도가 낮은 인디 브랜드들이 가성비를 앞세워 해외로 진출하고 있지만, 고환율이 장기화되 가성비를 강조하는 게 어려워진다”면서 “원자재 수입비 증가를 비롯해 글로벌 경기 둔화, 경쟁력 약화, 고정비 부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환율 상태가 장기화되 것이 불편한 업종은 또 있다. 바로 식품업계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푸드 트렌드는 바로 ‘K-푸드’다.

국내 화장품 업계는 미국 시장 공략에 공을 들였다.

정부에 따르면 2024년 케이-푸드 플러스(K-Food+) 수출액(잠정)이 지난해보다 6.1% 증가한 130.3억달러로 역대 최고실적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케이푸드플러스는 케이푸드(K-food·한국식품)에 더해 스마트팜·농기자재·동물용의약품 등 농식품 전후방산업을 포함한 개념이다. 농식품 수출액은 99억8000만 달러, 전후방산업은 30억5000만 달러로 각각 집계됐다.

이중 농식품 수출 1위 품목인 라면은 전년도 실적인 9억5000만 달러를 10개월만에 초과 달성해 연말까지 12억5000만 달러 수출했다. 전년 대비 31.1% 증가한 수치였다. 라면은 드라마, 영화 등 K-콘텐츠에 자주 노출되고 라면먹기 챌린지가 유행하면서 권역별 고른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미국에서는 텍사스의 대형 유통매장 신규 입점에 성공하면서 수출이 70% 이상 증가했다.

상위 수출 품목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인 쌀 가공식품은 전년 대비 38.4% 성장한 3억 달러를 수출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하였는데(51.0%↑), 글루텐프리 건강식,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가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아모레퍼시픽처럼 국내에서 제조 후 직수출하는 기업은 다소 유리할 수 있다.

원재료 상승 등…고환율 변수에 가격 못 울리는 식품업계
미국·중국·아세안·유럽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수출이 증가했고 특히, 냉동김밥 성장을 주도한 미국, 건강식에 관심이 높은 유럽, 라면 수요가 증가한 중남미에서 20% 이상의 증가율을 보였다. 수출액 1위 국가는 미국, 2위는 중국, 3위는 일본으로 집계됐다.

2024년 최대 수출 시장인 대(對)미국 수출은 역대 최대 실적(15억9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 3위 시장에서 1위 시장으로 성장하였다. 과자류, 라면, 냉동김밥 등이 SNS에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었고, 현지 스포츠 행사(야구·골프대회 등) 및 대학과 연계한 K-푸드 체험 기회를 통해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다. 여기에 현지 대형 유통매장(코스트코 등) 및 소매점(파이브 빌로우 등) 입점이 확대되면서 수출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렇듯 승승장구하는 상황에서 고환율이라는 변수가 생기는 것에 대해 좋을 것이 없다.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식품업계 대부분의 원재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다. 환율이 오르면 식품업체 대부분이 쓰는 원맥과 원당 등 수입 가격이 상승한다. 원맥은 밀가루의 원료이며 원당은 설탕의 원료로 라면이나 빵, 과자 등에 들어간다. 초콜릿의 주원료인 코코아, 커피 원두 등은 환율 때문이 아니더라도 가격이 치솟고 있었는데, 부담이 더 가중했다.

고환율이 이어지면 화장품의 제조 단가가 올라가게 된다.

패션업계 역시 고환율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주로 해외에서 원단을 조달하고, 해외 생산에 의존하는 구조로 인해 물류비 상승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미 기획과 생산을 완료한 FW(가을·겨울) 시즌 제품은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달러 강세가 장기화되면 SS(봄·여름) 시즌 기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국내 패션업체는 대체로 수출 비중이 낮고 내수 시장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의류 원단 등 원부자재를 해외에서 조달하고, 해외 생산 시설을 활용하는 만큼 환율 상승 시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유통업체들이 고환율이 더 괴로운 건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부담이 늘어나는 반면 제품 가격은 마음대로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간 정부는 주요 식품기업 및 외식업계 대표와의 소통하면서 가격을 인상하지 말라는 압박을 취해왔다. 눈치싸움 끝에 섣불리 올렸다간 여론의 질타가 쏟아질 수도 있다.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50원, 100원 차이로 소비자가 손에 집었다가 내려놓는 상품이 바로 유통업체들의 상품이다.

환율이 높게 이어지면 식품 기업들의 원자재 부담이 커진다

삼양식품 지난해 4분기 매출 4364억…고환율 속 엇갈리는 희비
물론 모든 유통업체가 울상만 짓는 것은 아니다. 해외 수출 비중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을 경우, 아무리 원자재 부담이 커져도 수익을 달러로 벌어들이는 만큼 환차익(외화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시 환율변동에 따라 자국통화로 평가된 자산가치 상승으로 인해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을 얻을 수밖에 없다. 달러 강세가 계속되면 달러 결제 비율이 높은 수출기업들은 원화로 환산하는 이익이 불어나는 효과를 얻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고환율 수혜 업체가 삼양식품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삼양식품 총매출 중 해외판매 비중은 78%다. 불닭 수출 호조에 힘입어 올 들어 3분기까지 매출이 1조2000억원을 넘어서면서 지난 연간 실적을 뛰어넘었다. 누적 영업이익은 131% 늘어난 2569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은 이미 올 상반기에 지난해 연간 실적을 넘어섰다. 삼양식품도 고환율 덕분이란 것을 인정했다.

패션업계도 원자재 일부를 해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고환율 부담이 작지 않다.

분기보고서를 통해 “3분기 누적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4.22% 증가했다”며 “해외 매출확대와 함께 ‘환율 효과’에 따른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4분기 실적 전망은 긍정적이다. 증권가는 삼양식품의 지난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3% 증가한 4364억원,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29% 증가한 830억원으로 전망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출 단가를 고려할 때 실제 매출 성장률은 수출 성장률을 상회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국내 식품·유통 기업은 내수에서 더 많은 파이를 늘리기에 한계가 있다”면서 “이제 해외로 눈을 돌리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원무역, 한세실업, 신원, 신성통상 등은 달러 강세로 인한 수혜를 볼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및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로, 주문부터 선적까지 보통 3~6개월이 소요된다. 원부자재를 구매했을 당시의 환율보다 제품 출하 시점의 환율이 더 높아지면 그만큼 추가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미국 수출 비중이 큰 만큼 원화로 환산한 영업이익이 더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 기업들은 지금의 고환율 국면이 반가울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경제 전체적으론 악재이기 때문에 열심히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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