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빵업계의 선두주자 SPC그룹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최근 발생한 제빵 노동자 끼임 사망사고가 발단이 됐다. 지난 10월 15일 오전 6시께 경기도 평택 소재 SPL(SPC그룹 계열사)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 A씨가 샌드위치 소스를 만드는 배합기에 몸이 끼는 사고를 당했고,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단순한 인명사고가 아니었다. 회사 내 매뉴얼은 2인 1조 근무였지만, 다른 직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무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데다 덮개를 열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는 자동 방호장치(인터록)조차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SPL의 모회사인 SPC를 향한 공분이 쏟아졌다.

더 큰 문제는 사고 후 회사 측의 대처였다. 사고 직후 기계에 낀 A씨를 처음 꺼낸 건 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노동자들이었다. 당시 사고 현장에서는 4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함께 근무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신을 직접 수습한 직원과 그 외에도 트라우마를 호소한 이들이 많았지만, 회사 측은 다음날 바로 현장 작업에 이들을 투입했다. 해당 작업장을 폐쇄하지 않고 곧바로 작업을 재개했다는 것이다. 사고 현장을 천으로 가려 놓은 채 직원들에게 작업을 지시한 것으로 보이는 현장 사진까지 공개되면서 매정한 기업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나아가 SPC 측은 노동자의 장례식장에 조문객을 위한 답례품으로 파리바게뜨 빵을 제공해 더 큰 빈축을 샀다. SPC그룹은 “통상 상을 당한 회사 직원에게 제공되는 상조 지원품 중 하나”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해당 직원이 빵을 만들다가 사망했다는 점에서 고인과 유가족의 심경을 배려하지 못한 무신경한 처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 재발 방지 대책, 하지만 싸늘한 여론
결국 SPC 그룹의 수장이 고개를 숙였다. 10월 21일 허영인 SPC 회장은 서울 양재동 SPC 본사에서 진행된 ‘대국민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 발표’를 통해 안전경영을 강화하고 직원들을 존중·배려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허 회장은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며 국민 여러분의 엄중한 질책과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면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그룹 전반의 안전관리 시스템을 철저히 재검하고 안전 경영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사고 다음날 해당 작업장을 폐쇄하지 않고 곧바로 작업을 재개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그는 “사고 장소 인근에서 작업이 진행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직원들의 충격과 슬픔을 먼저 헤아리고 보듬지 못한 점을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SPC는 향후 3년간 1000억원을 투자해 전사적인 안전관리를 강화한다는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엔 SPC그룹 전 사업장의 산업안전보건진단 실시, 전문가·현장직원이 참여하는 안전경영위원회 구성, 산업안전보건 전담 인력 확충, 노조와 소통을 통한 근무환경 개선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했다. 허 회장이 작은 목소리로 사과문만 읽고 질의응답을 생략하고 기자회견장을 떠난 것에서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SPC그룹 사건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과 이틀만에 계열사인 경기 성남시 샤니 제빵 공장에서 40대 직원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허 회장의 재발 방지 약속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정치권도 관련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출근길 약식 회견에서 “법이나 제도, 이윤 다 좋지만 사업주나 노동자나 서로 상대를 인간적으로 살피는, 최소한의 배려는 하면서 사회가 굴러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 SPC그룹 브랜드, 파리바게뜨ㆍ베스킨라빈스ㆍ던킨 등 불매 운동
국회 국정감사는 SPC 그룹의 산업재해 사고를 조명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받은 ‘최근 5년간 SPC그룹 계열사의 산업재해현황’에 따르면, 2017년 4명에 불과하던 산재 재해자 수는 2018년 76명으로 급격히 늘어났으며 2021년에는 147명, 2022년 9월 기준으로 이미 115명의 산재 재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악화한 여론은 ‘SPC그룹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일부 국민들이 SNS 상에서 ‘SPC 불매’ 헤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을 올리고 파리바게뜨, 베스킨라빈스, 던킨, 삼립, 파스꾸찌, 쉐이크쉑 등 SPC그룹 브랜드 목록을 작성해 SPC그룹 브랜드를 불매하겠다는 게시물을 전파하는 중이다.

대학가에서도 SPC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대 학생 모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피 묻은 빵을 만들어온 죽음의 기계, 이제는 함께 멈춥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대학 캠퍼스 내 여러 게시판에 게시했다. 성공회대 노학연대모임 ‘가시’는 캠퍼스 내 한 게시판에 “SPC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이름의 대자보를 부착했다.

SPC그룹 입장에선 난감한 상황이다. 이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PC삼립은 지난 2월 ‘포켓몬빵’을 출시해 품절 대란을 빚으며 큰 인기를 누린 바 있다. 이에 힘입어 실적도 빛났다.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4% 성장한 8149억원을 기록하면서 처음 8000억원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특히 영업이익은 23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1.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불매운동이 본격화하면 지금 같은 매출 성장세를 유지하기 어렵다. 과거 ‘남양유업 갑질사태’, ‘노 재팬(일본산 제품 불매운동)’ 사례에 비춰보면 불매운동 영향으로 실제로 기업 매출이 급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2019년 7월 문재인 정부의 과거사 문제 처리에 불만을 품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향해 수출통제조치를 취하면서 벌어진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효과가 컸다. 불매운동 이전인 2018년 1조3731억원에 달하던 유니클로의 매출액은 2020년엔 6297억원, 2021년엔 5824억원으로 반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금융시장도 SPC 그룹의 매출 하락도 우려한 탓인지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그룹의 상장 계열사 SPC삼립 주가는 10월 24일 전장보다 4.3% 하락한 6만8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한 주 동안 전주 대비 11% 하락(7만8800원→7만1400원)하더니 이날도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 가맹점주, 매출 직격탄, 철저한 원인 분석 이행 촉구
가맹점주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SPC가 해결해야 할 까다로운 문제다.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애꿎은 가맹점주들이 맞았기 때문이다. SPC그룹이 영위하는 브랜드 중 파리바게뜨의 점포 수는 2020년 기준 3425개, 파스쿠찌 522개, 던킨 712개, 배스킨라빈스 1542개에 달한다. 이들 매장을 운영하는 가맹점주는 SPC와 계약을 맺은 개인 자영업자다. 본사의 잘못된 행동때문에 무고한 수많은 가맹점주까지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이다.
물론 이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은 프랜차이즈 본사 또는 경영진 개인 잘못으로 가맹점주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 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게 했다. 일명 ‘호식이 방지법’으로 불린 이 법률안은 최호식 전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의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다만 이번 사고가 ‘오너 리스크’와는 무관한 산업재해 관련 사고라는 점에서 법 적용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매출 하락이 현실화하자, 파리바게뜨 가맹점주협의회는 10월 22일 “내부의 감시자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협의회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데 대해 고인과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드린다. 참으로 애석하고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면서 “SPL 사고에 대한 국민의 안타까움과 질책에 가맹점주들도 같은 마음이고 공감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SPC)에 이번 사고에 대한 철저한 원인분석과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 안전경영강화 계획의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겠다”고도 강조했다.
SPC는 사법 리스크에도 휘말리게 됐다.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지난 10월 20일 SPC 계열사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섰다. 고용부는 SPL의 강모 대표이사를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했으며, 경찰은 평택공장의 공장장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을 일인데 미흡한 사후대처로 SPC가 화를 키웠다”면서 “젊은세대를 중심으로 가치소비 트렌드가 퍼지고 있다는 점에서 SPC 그룹은 불매운동의 악영향이 실적에 반영되는 걸 피할 수 없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