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패션 대리점주 중에는 패션분야 전문가 못지않는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여러 대리점을 열고 닫으면서 다양한 브랜드를 접한 경험을 갖고 있고, 대리점 운영으로 각 브랜드를 들여 다 볼 수 있는 기회를 통해 브랜드의 장단점을 집어 내는 시각 또한 갖춘 것이다.
전라도 익산과 광주지역에서 10여 개의 패션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권용상 사장이 그 중 한 명이다. 권 사장은 지금까지 25년간 수많은 패션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브랜드의 흥망성쇠를 지켜봤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브랜드를 선택하고, 운영하면서 쌓은 체험들로 패션 브랜드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능력까지 갖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40~50여 개의 패션 대리점을 오픈하고 닫는 동안 수많은 브랜드가 시장에서 탄생하고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또한 브랜드 본사 대표와 상품기획자,영업본부장 등 각 부서를 대표하는 사람들과 상담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패션 사업을 보다 많이 이해하게 됐죠.그리고 매장을 운영하면서 고객과 판매 현장까지 하나씩 배우게 됐습니다.이 같은 여러 경험들이 패션 브랜드의 성장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권 사장은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으로 볼 때 패션 브랜드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라지는 라이프사이클이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라이프사이클이 긴 브랜드도 있고, 짧은 브랜드도 있고, 드물지만 수십, 수백 년 롱런하는 브랜드도 분명히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여 말했다.
권 사장은 패션 브랜드들이 타깃으로 하는 고객층을 네 단계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일 먼저 트렌드를 만들고 트렌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남들과 다르게 입고 싶어하는 트렌드 리더층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트렌드 리더를 따라하는 트렌드 모방층이 있다고 한다. 이 트렌드 모방층은 평소 ‘멋쟁이’ 라고 불리는 사람들로 패션에 시간과 비용을 많이 투자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일반층이다. 일반층은 패션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끝으로 보수층이 있다. 보수층은 브랜드와 스타일을 재한적으로 바꾸고, 되도록이면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층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트렌드 리더층은 전체 패션 소비층의 5%안쪽을 차지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트렌드 모방층은 10% 정도를 차지한다고 보고 있고요. 일반층은 20%, 나머지가 가장 많은 보수층이65%정도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죠. 일반적으로 어떤 한 패션 브랜드의 경우 런칭 초기 트렌드 리더층이 입다가, 시간이 지나면 모방층에 이어 일반층이 입고, 더 시간이 지나면 보수층까지 입게 됩니다. 마지막단계인 보수층이 주요 고객으로 떠오르게 되면 브랜드 수명이 다해 3~5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권 사장은 어떤 한 브랜드가 런칭 초기에는 감도 있고 트렌디한 스타일을 선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출과 이익을 높이기 위해 보다 많은 고객들을 타깃으로 하는 베이직한 상품들을 출시하게 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더 시간이 흘러 베이직한 상품 비중을 계속해서 높이다 보면 더 이상 브랜드는 성장하지 못하고 멈추게 되고 결국 하락하다 수명을 다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권 사장은 일반층이 옷을 입기 시작하면 맨 위 단계인 트렌드 리더층이 안 입기 시작하고. 보수층이 입기 시작하면 두 번째 단계인 트렌드 모방층이 안 입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최후에 보수층 고객까지 떨어져 나가면서 패션브랜드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브랜드가 너무 매출과 성장에만 집중하게 되면 대중적인 베이직 상품 비중을 계속해서 높이고, 트렌드를 이끄는 감도 높은 상품은 점차 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당장은 성장하는 것 같지만, 결국 성장 동력이 사라져 한쪽에서는 브랜드가 쇠락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트렌드 리더층과 모방층이 계속해서 해당 브랜드를 선택하도록 트렌드에 민감하고 감도 높은 상품을 계속해서 개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권 사장은 현재 운영하고 있는 대리점 브랜드 중에는 일반층과 보수층으로 내려가는 브랜드도 있고, 트렌드 리더층과 트렌드 모방층에 머물러 있는 브랜드도 있다고 한다. 당연히 이들 중 일반층과 보수층에 있는 브랜드가 매출도 크고 이익도 크다. 하지만 미래가 불안한 브랜드도 바로 이들이라고 한다. 현재 트렌드 리더층과 트렌드 모방층에 위치한 브랜드는 안정적인 매출 추이를 보이면서 점차 상승하고 있고,이들의 미래는 불안하지 않고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락하는 브랜드들의 더 큰 문제는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르는 경우입니다. 일반층에서 보수층으로 내려가고 있는 브랜드라면 빨리 방향을 틀어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감도와 트렌드를 끌어 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브랜드가 또 성장하고,계속해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트렌드 리더층과 트렌드 모방층에 있는 브랜드는 더 이상 내려가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롱런하는 스테디셀러 브랜드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순간에 하락해 브랜드가 단명할 수도 있죠.”
권 사장은 브랜드가 롱런하려면 본사의 역할과 대리점의 역할이 나눠져 있다고 강조했다. 본사는 브랜드 정체성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 컨셉에 맞는 품질과 뛰어난 디자인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리점은 고객 서비스와 매출을 높이는 역할을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사와 대리점이 각자 해야 하는 역할을 잘 할 때 브랜드는 롱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뢰가 반드시 형성돼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사직원들 사이의 신뢰, 본사와 대리점 간의 신뢰가 필요합니다. 사람이기에 실수도 하고, 때론 어떤 이유 든 매출이 하락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뢰가 있다면 기다리고, 인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관계가 끊어지고, 결국 헤어지게 되는 것이죠.”
권 사장은 전국에서 직원과 고객관리를 잘 하는 대리점주로 유명하다. 매일 아침 전직원을 모아 조회를 하고, 매뉴얼을 만들어 수시로 친철 교육, 고객 응대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 주변에서는 권 사장의 직원들에 대해 실력이 한두단계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 사장은 매장 직원들을 판매사원이라고 부르지 않고, 파트너라고 부르는 등 직원들을 대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또한 고객관리는 단골고객과 고정고객을 구분해 관리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로 효율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고정고객은 한번 선택한 브랜드만을 고집하고, 다른 브랜드로 잘 갈아타지 않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고객의 네 단계 분류 중 보수층이 여기에 속하죠. 그리고 단골고객은 친절과 신뢰를 통해 형성됩니다. 매장에 왔을 때 얼마나 친근감 있게 대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단골고객이 결정됩니다. 패션 매장의 경우 고객의 재방문 기간이 평균 2개월로 나옵니다. 2개월마다 방문하는 사람들을 고정고객과 단골고객으로 잘 유입시켜야 이들을 통해 매출이 안정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권 사장은 악성고객과 충성고객에 대해서도 생각을 공유했다. 악성고객과 충성고객은 모두 AS와 클레임 때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이들을 대면 하느냐에 따라 악성고객이 될 수도 있고,충성고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객들로부터 ‘다른 브랜드는 해 주는데 왜 안해주나? 라는 식의 불평이 나오면 악성고객이 된다. 그렇지 않고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라는 호응이 나온다면 충성고객이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