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5월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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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놓고 권리 누리는 쿠팡·무신사 창업주, 그들만의 사퇴 기술

물류창고 불 났을 때 사퇴한 김범석 의장, 젠더 이슈 책임지고 물러난 조만호 대표

지난 6월 발생한 경기도 이천의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불을 낸 범인은 전기장치였다. 그리고 이를 더 큰 불로 키운 건 ‘안전 불감증’이었다. 화재업무를 담당하는 방재실 직원이 경보 시스템을 6차례나 초기화했기 때문이다.

쿠팡 방재 시스템은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설치된 센서가 연기와 열을 감지하고, 감지 결과가 설정된 기준을 넘어서면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화재 여부 확인 없이 ‘화재복구키’버튼을 눌러 초기화했다. 결국 화재경보기가 6차례 제대로 작동했지만, 이들이 시스템을 6차례 초기화하는 바람에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진압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됐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김범석 의장(사진 01)이 물러난 후 쿠팡 국내 법인의 새 경영진은 전문경영진으로 채워졌다. 강한승 쿠팡(주) 신임 이사회 의장(대표이사)(사진 왼쪽), 전준희 쿠팡(주) 신임이사(개발총괄 부사장)(사진 가운데),유인종 쿠팡(주) 신임이사 (안전관리 부사장)(사진 04).

경찰은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쿠팡 물류센터 내 전기 및 소방시설을 전담하는 A업체 소속 팀장인 B씨와 직원 2명을 입건했다. 또 A업체 법인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화재 당시 쿠팡 직원 들은 모두 대피했지만, 119 구조대장이 건물 지하 2층에 진입했다가 화재가 확산할 때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해 숨졌다. 이런 참혹한 비극의 배경도 결국 인재(人災)였던 셈이다.

흥미롭게도 물류센터의 주인인 쿠팡은 처벌을 면했다. 경찰은 “쿠팡 본사가 하청업체에 화재 경보를 끄라고 지시한 정황을 확인할 수 없었고, 노동자 인명 피해도 나지 않아 업무상 과실 혐의도 적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물류센터 화재와 김범석 창업자의 국내법인 의장·등기이사 사임 발표가 함께 이뤄지면서 쿠팡은 비난에 시달렸다. 사진=쿠팡

그렇다고 쿠팡이 도덕적 책임까지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화재가 벌어졌을 당시, 쿠팡은 곤혹스러운 오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가 해외 시장 공략에 전념하겠다며 이사회의장과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았는데, 공교롭게도 사퇴 소식이 쿠팡 덕평물류센터 지하 2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을 때 전해졌다.

당연히 김 전 의장의 사퇴를 보는 여론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쿠팡 관계자는 “김 전 의장의 사임과 사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서 “사임등기가 완료돼 일반에 공개된 시점에 공교롭게 화재가 발생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대중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쿠팡이 법인 등기부등본까지 공개하면서 사퇴와 화재가 관계없다는 걸 입증했지만, 온라인상에선 ‘쿠팡 불매·탈퇴’를 외치는 소비자가 속출했다. 화재 사고뿐만 아니라 김 전 의장이 최근 쿠팡을 둘러싼 각종 악재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쿠팡이 뉴욕증시에 상장하면서 김범석 창업자는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됐다. 사진=쿠팡

사실 사임의 진짜 이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찌 됐든 김 전 의장이 등기이사에 물러나면서 얻는 이익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여론의 지적대로 김 전 의장은 각종 소송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등기이사는 주주총회의 보통결의를 거쳐 선임된다. 회사와는 위임관계에 있기 때문에 민법상 각종 위임 규정이 적용된다. 또한 상법상 이사의 권한을 주면서 그에 따른 무거운 의무와 책임도 지운다.

예를 들면 등기이사는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된 행위를 할 경우 회사와 연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등기이사가 재계에서 ‘책임 경영’의 상징으로 꼽히는 이유다. 김 전 의장은 등기이사에서 물러났으니, 쿠팡을 둘러싼 각종 민·형사상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

◇ 김범석 전 의장, 미국 국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책임 회피 가능
김 전 의장은 올해 초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의 타깃이 될 가능성도 적다. 내년 1월 시행을 앞둬 법의 책임 범위가 아직 애매모호하지만, 김 전 의장의 경우 국내에서 맡는 직책이 없다 보니 처벌을 강하게 주장할 여지가 사실상 없다.

미국 기업의 CEO로만 남은 김범석 전 의장에게 경영 책임을 지울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동일인(총수)’지정을 받을 경우, 국내 사업장 직함과 관계없이 법적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

쿠팡의 소방시설 하청업체 직원은 경보기가 울렸는데도 현장 확인 없이 시스템을 초기화했다. 사진=쿠팡

공정위의 판단 기준은 사회 통념상 사실상의 경영권을 갖고 있느냐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의결권 76.7%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김범석 전 의장은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한다고 볼 수 있다. 동일인 지위를 받게 되면 해당 오너 일가는 일감 몰아주기 금지 등 갖가지 규제를 받게 된다. 법 위반이 발견되면 제재하고 심한 경우엔 검찰에 고발한다.

하지만 김범석 전 의장은 동일인 리스크에서도 자유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올해 쿠팡의 동일인을 창업주인 김범석 전 의장이 아닌 법인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김 전 의장의 국적이 미국이란 점 때문이다. 그간 공정위는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사례가 없었다.

흥미롭게도 혁신기업으로 꼽히는 창업주 중에선 김 전 의장과 같은 움직임을 보인 이들이 적지 않다. 비슷한 시기 국내 최대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창업자 조만호 전 대표가 대표이사 자리에서 내려왔다. 올해 초 불거진 고객 대상 쿠폰 발행, 이벤트 이미지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었다.

앞서 지난 3월 무신사는 여성 고객 유입을 늘리기 위해 여성 회원에게만 쿠폰을 지급해 논란이 됐다. 지난 5월에는 현대카드와 함께 진행한 물물교환 이벤트 이미지에서 카드를 잡은 손 형태가 특정 성별 차별과 혐오 상징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회사 문제에 책임을 지겠다는 조 전 대표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보는 여론도 많았지만, 정반대의 시선도 있었다. “무신사와 제 자신과의 분리가 필요하다”는 조만호 대표의 설명과 달리 실제로 분리가 될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조만호 전 대표는 사퇴 이후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신사 스토어 운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해외 사업 등 회사의 중장기 전략 수립에 주력한다고 한 것이다. 책임질 일은 줄었지만, 권한까지 줄어들었다고 보긴 어렵다. 애초에 회사의 해외 투자업무 자체가 회사의 미래 성장을 결정하는 중요한 업무인 중책에 해당된다.

무신사가 젠더 이슈에 휘말리면서 창업자인 조만호 대표가 사임했다. 사진=무신사

다시 쿠팡을 살펴 보면 김 전 의장은 등기이사를 사임했음에도 그는 의결권을 가장 많이 가진 경영진이자 창업자, 그리고 오너다. 김 전 의장은 한국 쿠팡의 모회사인 미국 쿠팡INC의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고, 의결권의 영향력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 김 전 의장이 가진 클래스B 주식은 주당 29표를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만호 의장 역시 마찬가지다. 예비 유니콘 기업 무신사의 최대주주로 추정되고 있다.

김범석 전 의장과 조만호 의장은 혁신 기업가로 통한다. 김 전 의장은 로켓배송을 앞세워 유통업계 혁신을 이끌어왔다. 뉴욕 증시 상장을 통해 100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조만호 대표는 2001년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개설했다. 이후 2009년 온라인 쇼핑몰 ‘무신사 스토어’를 개설해 지난해 거래액 1조2000억원 기업으로 키웠다.

이들이 꾸린 비즈니스 모델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큰 부를 창출했고, 산업의 구조를 바꿨다는 점이다. 기존 사업과의 갈등 수위가 높고 사회적 책임이 적지 않다는 점도 똑같다. 두 기업의 행보가 국민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민감도와 영향력도 상당하다.

이 때문인지 두 CEO는 기존 재벌기업 창업주들과 다른 평판을 얻으려 애썼다. 스타트업 투자와 자선사업 지원에 적극적인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김범석 전 의장과 조만호 의장의 사임 결정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보수와 권한은 많으면서 법적 책임만을 회피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잘못된 과거 재벌 오너들과 다를 게 없는 행태라는 것이다.

김범석 전 의장의 경우 쿠팡 국내 법인 100% 지분을 보유한 미국 쿠팡Inc가 올 3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되면서 돈방석에 앉았다. 그의 지난 해 연봉 88만6000달러(약 10억원)에 스톡옵션 형태 상여금 1325만 달러(약 150억원) 등을 더해 총 보수 1434만 달러를 지급받았다. 우리 돈으로 160억원을 훌쩍 넘는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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