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서브컬처를 재해석하며 수많은 팬덤층을 확보하고 있는 디자이너 김세형의 아조바이아조, 2024 S/S는 어떠한 색깔의 컬렉션을 선보일 것인가. 이번 시즌 컬렉션 테마는 ‘쉐도우 복싱(SHADOW BOXING)’이다.
쌍둥이 모델을 기용해 미러링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한 이번 컬렉션은 ‘도로헤도로’에서 보았던 다양한 공간과 상황들을 접목시켜 AI로 먼저 룩북을 완성했다. 그가 시즌 컬렉션을 진행할 때 영감을 얻는 것은 청춘들의 분노, 우울, 외로움 등이었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두움에 관심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성장 영화, 만화 등을 찾아보며 영감을 얻은 그에게 2024 SS에 잡은 것은 만화 ‘도로헤도로’다.
만화 속 주인공은 자신을 괴물로 만든 마법사를 찾고, 자신의 입 속에 있는 인물에게서 그 실마리를 찾으려 고군분투한다. 이 모습이 마치 현재의 우리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족스럽지 않은 현재의 나 자신을 세상을 향한 분노로 쏟아내면서도 자기 자신을 다시 검열하는 모습들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대상이 혹시나 자신이 아니였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됐다고 한다.
2016년에 론칭한 아조바이아조는 단순히 멋진 모델이 아닌 드랙퀸, 트렌스젠더, 장애인, 노인 등 사회 비주류에 속하는 이들을 브랜드의 얼굴로 담아냈으며, 이번 컬렉션에서도 그들만의 색깔을 잘 보여줬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 나가기 위해 작년부터 파리 패션위크 기간 동안 수주회에 참가하고 있다. 지난 시즌은 트라노이에 참가했지만 이번에는 맨앤우먼에 참가한다. 많은 브랜드가 쇼룸과의 비즈니스를 형성하고 있지만 그는 현재 바이어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서 수주회에 참가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 트렌스젠더, 장애인, 노인 등 김세형 화법으로 완성
‘아조바이아조 특유의 오버사이즈와 레이어드룩이 해외 셀러브리티에게 녹여졌을 때, 시너지가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 김세형 대표의 생각이다. 이렇듯 아조바이아조 브랜드만이 갖고 있는
경쟁력은 ‘다양성’을 근간으로 한다. 이러한 철학 아래 2016년 첫 시즌부터 지금까지 아조바이아조 룩북에는 키가 180cm가 넘는 프로페셔널한 모델이 등장한 적이 없다. 모든 모델을 주변에서 찾았다.
시간이 흘러 주변에서 찾는 것에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2022년 첫 서울패션위크 패션쇼를 준비하면서는 그동안 아조바이아조 룩북에 섰던 모델들을 무대에 대거 등장시키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
김세형 대표는 “스트리트 패션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동시대의 문화를 옷으로 표현하는 옷의 장르라 생각하기 때문에 제 주변에서 모델을 찾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델과 스타일을 조롱하는 악성 댓글도 달렸었죠. 제가 브랜드를 론칭한 시점만 해도 많은 스트리트 브랜드들의 룩북은 백인 모델에게 감자칩을 주거나 스케이트 보드를 타게 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브랜드들이 많이 늘어났고 미의 기준이 보다 폭넓게 인식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지금은 많은 분들이 이러한 아조바이아조의 특성을 사랑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외출을 할 때 꼭 명함을 챙기고 나갑니다. 클럽, 갤러리, 행사, 카페, 레스토랑 등 어디서나 주변을 살피고 내가 보기에 멋진 사람들에게 명함을 건네는 것에 스스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 스트리트패션은 동시대 문화를 표현하는 장르
패션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해 그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스스로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자신을 가꾸고 꾸미는데 학창시절을 보냈다.
패션은 전공해서가 아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옷은 그러한 나를 표현하는 것’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러면서 더욱 더 패션에 대한 애정이 생겨났고 ‘나의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꿈을 점차 키우게됐다.
아조바이아조 2023 FW 컬렉션에는 크롭 기장의 그래픽이 있는 스웨터가 있다. 사람들이 이 스웨터를 짧은 기장감으로 입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다른 그래픽의 큰 티셔츠를 안에 레이어드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크롭 기장의 스웨터와 그래픽이 있는 오버사이즈 티셔츠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레이어드해 스타일링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이러한 유니크함이 아조바이아조의 스타일의 강점이다.
김 디자이너는 “2023 FW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2017년에 만들었던 옷을 다시 꺼내본 적이 있었어요. 그 옷을 본 우리 직원이 자신이 고등학생 때 샀었던 옷이라고 하면서 신기해 했었죠.
그 직원은 이 옷을 고등학생 때 샀고, 현재는 스타일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아조바이아조를 입고 다녀요. 그 때 들었던 생각이 ‘아조바이아조를 좋아하던 친구들이 이제 졸업을 하고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그들은 아조바이아조를 어떻게 입고 다닐 것인가’였습니다”라고 설명했다.

◇ ‘나만의 브랜드’로 ‘나를 표현해내기’로 결심
이어 그는 “브랜드의 타깃은 유동적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가 나이가 든다면 자신이 어렸을 때 산 브랜드를 더이상 입지 않겠죠. 하지만 저는 그것을 새로운 스타일로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023 FW 컬렉션은 지금까지 아조바이아조가 만들었던 옷들을 모두 아카이브화해 새로운 스타일로 제시했습니다”라며 아조바이아조 아카이브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이 나이가 들어 스타일이 바뀌었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새롭게 스타일링 할 수 있다는 것이 아조바이아조 컬렉션의 포인트인 셈이다.
김 디자이너는 고객들과 소통에서 ‘브랜드와 옷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 브랜드의 스타일로 그룹을 만들어 나갈 것, 같이 나이 들어 갈 것’을 꼽았다. 마케팅과 영업을 통해서 옷을 판매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지만 단순하게 옷을 파는 행위만으로 그쳐서는 안됨을 강조했다.
이 브랜드가 어떠한 브랜드이고, 왜 이런 옷을 디자인했는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알아서 이해하기엔 현재 너무 많은 브랜드와 옷들이 존재하지 않나’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소비자들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따라와 주기도 하고 오히려 새롭게 발전시켜주기도 한다는 것. 또 이러한 것들은 하나의 소통의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같이 또 하나의 트렌드 그룹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김 디자이너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이 나이들어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의 브랜드 타깃이 20대였다가 40대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브랜드가 세대별로도 나눌 수 있어서 이것이 새로운 장르에서의 클래식이 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2024 FW 컬렉션은 대만 사진작가 Chien-ChiChang의 The Chain이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진행했다. 비슷한 증상의 환자들을 체인으로 묶어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정신병 환자들을 관리했던 병원을 고발하기 위한 흑백 초상 사진 작품이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체인으로 묶여있는 환자들의 이미지가 하나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 세대별로 나눌 수 있는 ‘새로운 클래식’이 돼야
이것이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 인물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작가는 하나의 이미지가 어떠한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졌는지 보는 이로 하여금 유추할 수 있게끔 하고자 했다.
그래야 사람들은 환자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고, 이 병원이 잘못됐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가 컬렉션 소재의 출발이었다.
“저는 패션도 이것과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행을 따르고 유행하는 스타일을 소비하면서 그들은 비슷한 스타일로 묶여져 나가요. 하지만 그들 각자는 모두 다른 가치와 개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자세히 보면 그들만의 멋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컬렉션 촬영은 페이스 타투가 있는 사람들로만 구성했죠.
그들을 한데 모아 놓으면 하나의 이미지로 읽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개성이 담긴 피부의 그림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모두 비슷한 명도와 채도의 아조바이아조 옷을 입고 있는 가운에에서도 그 스타일의 멋을 찾다 보면, 하나 하나의 디자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한다.
글로벌 무대에서 K브랜드로 서기 위한 필요조건에 대해 그는 2가지로 요약했다. ‘스타일’과 ‘유통’이 그것이다. 잘하는 브랜드는 이미 충분히 많다는 것이다. 잘하는 것보다 오래하는 것이 더욱 어렵고, 현재 전세계 분위기상 한국 브랜드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가 전보다는 용이해졌다. 브랜드가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할 줄 안다면 그 스포트라이트는 잠깐의 반짝임이 아닌 나의장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 수출과 유통에 있어서 생각보다 준비가 돼있는 브랜드는 많지 않습니다. 브랜드는 이것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어요. 소비자와 직접적 소통도 중요하지만 바이어들과의 소통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의 많은 브랜드들이 쇼룸과의 비즈니스가 예전보다 활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으로 물리적인 업무를 이행해야 하는 것은 브랜드 측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아조바이아조의 첫 플래그쉽십 스토어는 을지로3가에 있었지만 현재 문을 닫았다. 그 이유는 마이너한 감수성의 재미있는 스토어들이 생겼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먹자 골목으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롭게 매장을 열기 위해 장소와 건물을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김세형 대표겸 디자이너가 반드시 고수하는 특별한 패션 철칙이 있다. 바로 ‘옷은 익숙하게, 스타일은 낯설게’다양한 트렌드를 옷에 자연스럽게 담아 디자인하면서도 이러한 디자인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아조바이아조가 글로벌 무대에서 힘찬 런웨이를 펼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