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5월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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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으로 떠오른 한국 e커머스의 위기!

티메프 사태가 부른 ‘후폭풍’ 어디까지

쿠팡과 더불어 한국의 1세대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분류되는 티몬과 위메프, 이른바 ‘티메프(티몬·위메프)’의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사건이 터진 건 지난 7월 초, 위메프가 셀러들에게 지급해야 할 정산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정산대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사실이 셀러나 일부 대형 고객 위주로 알려지다가, 위메프와 같은 모회사(큐텐)를 둔 티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이슈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티메프 측은 “전산 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한 게 문제를 일으켰다”면서 “조만간 정산대금을 모두 지급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이어 “정산대금 지급이 지연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여론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 어떠한 대책 없이 ‘무기한 정산 지연’을 발표한 셈이기 때문이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규모가 큰 플랫폼이 며칠 만에 무너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 컸다.

이때부터 돈을 받지 못한 셀러뿐만 아니라 티메프를 이용하는 고객까지 동요하기 시작했다. 사건 초기인 7월엔 여행상품 문제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여행사들이 티메프가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점을 발 빠르게 파악해 항공권, 호텔 예약 등을 일방적으로 취소했기 때문이다. 이탓에 수개월 전 돈을 입금하고 여행상품을 예약한 고객들은 제 날짜에 여행을 갈 수 없는 큰 피해를 입었다.

사실 사태의 가장 큰 문제는 물건을 팔았는데 돈을 못 받은 입점 업체, 즉 셀러의 피해가 속출했다는 점이다. 이들 대부분이 자금력이 넉넉지 않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렇게 지급되지 않은 돈의 규모를 2745억원으로 파악했다. 이것도 규모가 큰데, 이 밖에 다른 것도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6월과 7월 두 달간 티메프에서 이뤄진 카드 결제 금액은 1조1967억원으로 나타났다.

선정산 대출(?!)…무너진 한국 이커머스 정산 시스템

티메프 사태가 터지면서 피해 셀러들이 각 회사 본사에 몰려들었다.(위메프 본사 전경)

이커머스 업체 티몬과 위메프는 일종의 플랫폼에 불과하다. 셀러가 올린 제품을 플랫폼에 올려주고 소비자에게 돈을 대신 받아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위메프와 티몬은 이 돈에서 수수료를 제한 뒤 셀러에게 전달하면 된다. 그런데 어떻게 플랫폼인 티메프가 이 돈을 유용할 수 있었던 걸까.

배경은 긴 정산 주기에 있다. 플랫폼 업체들은 자율 규제를 통해 판매 대금 정산 주기를 입점 판매자와 당사자 간 계약을 통해 정하고 있다. 플랫폼 업체들은 소비자로부터 구매 행위가 이뤄진 2~3일 안에 결제 대금을 받는 반면, 입점한 판매 업체에게는 나중에 입금한다. 티메프는 판매 후 최대 두 달이 넘어야 판매자에 정산금 지급을 해왔다. 이 기간에 자금을 어떻게 쓰던지는 티메프의 마음대로였다.

티메프가 결제대금을 두달가량 보유하며 운영자금 등으로 쓴 사이, 셀러들은 ‘선정산 대출’에 내몰렸다. 선정산 대출은 전자상거래업체를 통해 물품을 판매하는 이들이 은행으로부터 먼저 판매대금에 해당하는 만큼 돈을 빌리고, 은행은 이후 전자상거래업체에서 대금을 받는 상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9년~2023년 8월 셀러들이 플랫폼 매출 채권을 담보로 대출 받은 액수는 1조8132억원에 달한다. 그중 위메프 입점 셀러가 대출받은 금액은 2554억원으로, 7개 대표 이커머스 플랫폼 중 두번째로 많았다. 셀러가 당장 티메프로부터 돈을 받지 못하니 은행에서 연 6% 내외 대출까지 받으며 사업 운용자금을 마련해왔다는 뜻이다.

이는 한국 이커머스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는 “예를 들어 글로벌 플랫폼 업체 아마존과 이베이는 짧으면 이틀, 길어야 20일 안에 셀러에게 판매대금을 지급한다”면서 “한국은 업체가 정산주기를 길게 잡더라도 어떤 규제도 적용하지 않았으니 언제든 이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산 주기가 이렇게 길지만, 대금을 판매자에게 지급하기 전까지 이커머스 업체가 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은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보니 업계는 티메프가 이 돈을 모회사 큐텐의 운영자금으로 썼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티메프 미정산 사태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큐텐은 구영배 대표가 2010년에 창업한 이커머스 플랫폼이다. 구 대표는 국내 이커머스 업계 1세대 경영인으로 지마켓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꼽힌다. 그는 국내 초창기 전자상거래 업체인 ‘인터파크’에서 근무하며 2003년 국내 최초 오픈마켓인 지마켓을 만들었다. 인터넷 열풍과 함께 전자상거래 시장을 개척하며 지마켓을 키웠고 2009년 지마켓을 당시 3억5000만달러에 미국 기업 이베이에 매각했다.

구 대표는 이듬해 싱가포르로 건너가 큐텐을 창업했다. 동남아 및 중국 등지에서 서비스하며 성장해오다가, 최근 들어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 커머스, 위시 등의 여러 쇼핑몰을 인수해왔다.

지마켓 매각 당시 이베이가 ‘한국에서 10년간 경업(경쟁영업) 금지 조항’을 요구해서다. 문제는 인수 기업 중 자금력이 탄탄한 기업은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그룹의 무리한 확장을 하다가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셀러의 정산대금을 대신 쓴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자금이 이미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보니, 셀러들도 대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티메프 사태가 이커머스 시장 ‘옥석 가리기’로 확대

티메프 사태의 피해는 복구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패션 플랫폼 중에서는 에이블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액과 첫 연간 흑자를 동시에 일궈냈음에도 불안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에이블리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에이블리는 자산총계가 1128억원인 반면 부채총계는 1672억원으로, 자본총계가 -545억원으로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다.

지난해 영업이익 33억원을 내며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2022년까지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하면서 쌓인 누적 적자 탓이다. 그간 시장점유율과 거래액을 늘리고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면서 적자가 지속된 상황이다.

티메프 미정산 사태는 이커머스 기반 플랫폼 기업 매각과 기업공개(IPO)에 부정적 영향을 줄가능성이 높다. 강제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SK스퀘어의 자회사 11번가가 대표적이다. 11번가는 당초 지난해까지 IPO를 완료해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돌려주는 게 목표였지만, 업황 탓에 이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 SK스퀘어는 FI가 보유한 지분을 다시 사들이는 콜옵션 행사를 포기하면서 FI가 직접 투자금 회수에 나서게 되면서 시장에 매물로 나와있다.

정부의 정책은 현장의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티메프와 달리 ‘빠른 정산’ 시스템을 갖춘 덕분에 11번가는 이번 사태의 수혜 기업으로 꼽히지만, 그럼에도 매각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투자자들이 이커머스 시장 자체에 지갑 열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돼 원매자 찾기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신선식품 배송 전문 업체 오아시스가 인수 후보로 떠올랐지만,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신세계그룹의 SSG닷컴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SSG닷컴은 지난 2019년과 2022년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와 블루런벤처스(BRV)캐피탈의 1조원(지분율 30%)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IPO를 전제로 풋옵션(매도청구권) 조항을 맺었는데, IPO가 무기한 연기돼 문제가 생겼다.

양측은 풋옵션 행사 대신 FI가 보유 중인 SSG닷컴 주식을 제3자에 넘기기로 합의했다. 올해 새로운 투자자를 찾지 못하면 신세계그룹이 이를 되사야 하는데, 최근 티메프 사태로 투자자를 찾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IPO 시장도 위기감이 고조된다. 기관뿐 아니라 개인 투자자도 이커머스를 꺼릴 게 분명하다. 지난해 상장을 연기했던 새벽배송 플랫폼 컬리와 오아시스는 ‘1호 이커머스 IPO’를 두고 재도전에 나설 것으로 기대됐지만, 상황이 너무 악화됐다.

재발방지 위해 정부 규제 강화…산업 성장 꺾일 것

구영배 큐텐 대표는 국회에 불려나갔지만 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컬리는 지난해 말 처음으로 월간 영업전상각이익(EBITDA) 흑자를 낸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처음으로 분기 기준 흑자를 기록했다. 비용 효율화를 통해 흑자를 이뤄내면서 상장 작업에 다시 시동을 걸 것으로 점쳐졌지만, 투심이 악화해 증시 문을 두드리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아시스 역시 11번가 인수를 검토한 뒤 몸집을 불려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려는 노림수를 가졌지만 11번가 인수도 불투명한 상황이고 IPO도 쉽지 않다. 오아시스는 지난해 2월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수요 예측이 부진한 결과에 상장을 철회했다. 티메프 사태로 산업의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선 더 부정적일 게 분명하다. 결국 공격적인 외형 확장이 유동성 위기로 돌아오면서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의 미래 전략이 불투명해진 셈이다. 특히 티메프 사태 발발 이후 적자 기업 인수를 강행해 몸집을 키우는 전략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이커머스는 미래를 위한 출혈 경쟁을 지속해왔는데 최근 중국계 이커머스 업체들의 등장으로 경쟁 강도가 더 심화됐다”며 “생존을 위해 더는 자금 조달을 늦추기가 힘든 상황으로 IPO에 성공하기 위해 기업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급물살을 탄 티메프 사태 재발 방지 움직임이 업계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사태 이후 플랫폼 기업의 정산 주기를 규제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업체별로 규모와 자금 운용 여력이 달라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건 오히려 산업 발전에 독이 될 수 있다”면서 “이제 막 자리를 잡는 산업인 만큼 규제는 면밀한 분석을 거치고 나온 뒤에 고려해야 합리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자지급결제대행(PG) 사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이커머스와 분리하는 방안도 살펴보기로 했다. PG사를 겸업하는 이커머스 업체들이 유동성 위기 상황에서 PG사 자금에 손을 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이밖에도 이커머스에 대한 경영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법안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커머스 판매자·이용자 보호는 필요하지만 티메프 사태와 무관하다고 볼 수 있는 기업들에 대한 무분별한 규제가 더 많은 플랫폼의 경영 악화를 불러 올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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