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나의 아틀리에를 방문해 온 한태민. 그는 어느 날 안토니오 리베라노에 대한 모든 것을 집대성하기로 결심했다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재킷, 셔츠, 타이 등 옷에 대한 모든 것 뿐만 아니라 나의 세밀한 이야기까지도 말입니다. 그러더니 그는 결국 세밀한 관찰과 노력으로 아틀리에의 수많은 비밀들을 모으는데 성공하고야 말았습니다. 그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합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한태민 샌프란시스코마켓 대표를 찾았던 날, 그가 건넨 책 ‘리베라노’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던 글이다. 이탈리아의 장인 안토니오 리베라노는 한태민 대표의 테일러링 스승이다. 리베라노에 대해 한 대표의 ‘존경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가 패션을 하면서 ‘테일러’ 작업에 대해 얼마나 진심인지에 대해서도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지난 1998년 피렌체로 건너가 폴리모다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던 한 대표는 2005년 즈음 리베라노 아틀리에를 첫 방문하고 난 후, 그의 패션 테일러링 작업에 빠져들게 됐다. 이후 한국에 귀국해 남성들을 위한 셀렉트숍 ‘샌프란시스코 마켓’을 론칭하며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유니크한 스타일의 편집숍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한태민 대표는 “안토니오 리베라노를 통해 옷을 입는다는 것은 단지 멋을 부리거나 몸을 보호하는 차원이 아닌 남자들의 우아함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며 안토니오 리베라노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했다.
남성 편집숍 ‘샌프란시스코마켓’의 DNA에 대해 한 대표는 이렇게 얘기한다. “이탈리아에 처음 유학을 갔을 때는 조르지오아르마니 옷을 좋아했죠. 그런데 이탈리아 사람들조차 대개는 조르지오아르마니 브랜드를 잘 입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어떠한 브랜드를 입는지가 궁금해졌어요. 흥미로운 점은 이탈리아에서 옷 좀 입는 사람들은 이탈리아 브랜드만을 고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웃음).
피렌체는 이탈리아의 교토 같은 곳이랄까요. 반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는 ‘멋쟁이’들이 존재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죠. 이러한 글로벌 패션 피플들의 문화적 취향을 캐치해 이름을 지은 것이 바로 ‘샌프란시스코 마켓’입니다.”
◇ 피티워모는 치열하지만 ‘스타 탄생’ 발판…K브랜드들 기대
서울 광진구 동일로2길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 사옥, 1층의 퍼품 공간과 위층으로 이어지는 라이브러리 코너, 그리고 이어지는 쇼룸은 그야말로 한 대표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최근 한 대표는 더욱 바빠졌다.
세계적인 남성복 박람회로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 피티워모 심사위원으로 발탁됐기 때문이다. 지난 2월 9일부터 12일까지 열렸던 피티워모에서 심사를 맡은 한대표는 국내 최초는 물론 글로벌에서도 아시아인 으로서는 처음이어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
피티워모에서 그의 임기는 3년으로 미래에 대한 구상을 그려갈 예정이며, 많은 브랜드들에 대한 엄격한 심사와 발굴 등도 진행하게 된다. 특히 실력 있는 디자이너 발굴에 대해 좀 더 집중할 생각이다.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는 한국 디자이너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K 브랜드들의 데뷔도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피티워모 심사위원을 맡게 되면서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는 “처음 제안이 들어왔을 때, 놀랐죠. 반면 그동안 쌓았던 신뢰 부분과 진정성 등을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도 동시에 들었습니다. 이곳 피트워모는 퀄리티 높은 브랜드를 골라내는 작업, 그리고 기준점도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가끔 한국브랜드가 올라올 때면, 이탈리아 쪽에서 바라보는 시각들도 궁금했는데 이제 많은 한국 패션 브랜드들이 실력을 인정받고 세계에 더 많이 알려지기를 응원할 생각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글로벌 시장에서 한 대표가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기 까지는 그만의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옷의 대한 가치’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는“새로 나온 핫한 브랜드, 또는 럭셔리 디자이너들이 내놓는 것들에 대해 솔직히 마음에 딱 와닿지 않는 것이 많았습니다. 경험치가 많은 사람들은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죠. 특히 저희 고객들을 볼 때 뭐랄까…그들이 찾는 특별한 패션은 유행이 아닌 ‘진짜 나만의 것’을 좇는 느낌이에요. 뜨고 있는 트렌디한 브랜드들에 대해서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해야할까요”라고 설명했다.
그의 패션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어떻게 패션을 시작하게 됐냐는 질문에 “패션이 그냥 좋았습니다” 짧고 굵직한 그의 이 한마디에서 패션에 대한 열정이 묻어났다.
“대학 졸업할 때 쯤 IMF가 터졌고, 세상이 어려워졌죠. 그당시 이탈리아 가서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1998년 말에 가서 패션스쿨에 입학했어요. 이탈리아 피렌체 6-7년간 거주하면서 폴리모다 학교에 입학해 패션디자인과 니트디자인 전공을 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마치고, 2005년에는 한국에 들어와 샌프란시스코 마켓 론칭하게 됐죠. 아버지가 언론인인 만큼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지만, 저는 패션을 너무 하고싶었어요.”
◇ 일본 편집숍은 가장 충격적인 경험… ‘내공’과 ‘힘’ 느껴

그가 패션사업을 하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일본 바이어와 함께 일본 편집숍을 갔을 때였다. 일본 바이어들은 미국 유럽 등 어느 국가 보다 내공이 대단했고, 지금까지 생각했던 패션 세계 그 이상의 것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일본 매장을 가보고 그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이런 매장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일본에 갔더니 이탈리아보다 더 잘하고 수준높은 편집숍들이 많았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브랜드들이 이미 일본 편집숍에 존재했고, 그러한 면에서 일본 편집숍이 현재 유럽 편집숍보다 휠씬 낫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라며 일본 편집숍의 수준에 대해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마켓은 론칭 후, 수 해를 거쳐오면서 지난 2012년부터는 브랜드 콘셉트가 점차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2012년에 지금의 80~85%의 기틀을 마련했고 이후 다음 단계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백화점에 진출해 현재 총 8개의 유통망을 구축했다. 특히, 지난 2023년 4월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오픈하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 뿐만 아니라 서울 도산공원점과 롯데 본점과 롯데 잠실점 등 굵직굵직한 유통 채널로 오픈이 이어졌고 신세계 대구점과 센텀시티점, 그리고 스타필드 하남점 등 연이어 오픈을 하며 유통 확장에 속도가 붙었다.
샌프란시스코마켓 숍내 상품은 아메리칸 캐주얼 스타일, 이탈리안 클래식 등이 어우러져 고급스러우면서도 퀄리티 있는 상품으로 구성하고 있다. 국내 디스트리뷰터 브랜드로는 오트리, 바라쿠타 등 5개가 전개 중이며 이 외에도 50여 개가 넘는 다양한 브랜드들이 구성돼 있어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 대해 안목이 좋다고 하는데 사실 제가 취향이 좋다기 보다는 제 스스로 호기심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이 입어본 경험치가 일반인보다 조금은 높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옷들을 많이 사서 입어 볼 기회가 많았으니까요. 많이 구입해서 입어보고 그러한 경험에서 축적된 것, 말하자면 ‘패션 경험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샌프란시스마켓은 신뢰와 믿음의 브랜드…이제 세계로!

샌프란시스마켓은 ‘신뢰와 믿음’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기업의 회장부터 인기 연예인, 스포츠맨 등 수많은 VIP와 셀럽들이 오랫동안 이곳을 찾는 이유다.
한 대표는 “새로운 브랜드를 픽업할 때, 디자인과 스타일도 중요하지만, 소재에 가장 먼저 눈이 갑니다. 실제 패션비즈니스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은 소재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패션 센스가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소재의 중요성은 랄프로렌에서 잘 나타나죠. 랄프로렌 넥타이가 제일 유명한데 바로 소재와 패턴 그 자체가 ‘랄프로렌의 스토리’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라며 소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그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생긴 이유가 리베르노 선생님을 만나서에요. 정말 대단한 인연이었고, 선생님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패션사업을 하면서 저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과 알게 됐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제가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라면서 그는 또 “이제는 현재 하고 있는 것들을 좀 더 잘 다듬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 제가 할 일이죠. 바로 샌프란시스코마켓의 핵심이기도 합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한 대표는 20년 이상을 편집숍 비즈니스에 매진하면서 사업가이자 바이어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만큼 커리어를 축적했다. 경영인이면서 동시에 남성복 디자이너로도 활약 중인 그가 이탈리아 피렌체에 ‘이스트 하버서플러스’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한국에 이어 또 다시 열풍을 이어갈 한 대표의 포부가 엿보인다. 남성편집숍 1세대로서 열정과 자신감, 그의 발걸음이 다시 세계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