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유통업계를 향해 거침없는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9월 10일, 공정위는 쿠팡이 자사 멤버십 회원에게 ‘서비스를 부당하게 끼워 팔았다’는 의혹을 두고 조사에 착수,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에 조사관을 보내 멤버십 운영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문제가 된 것은 쿠팡의 멤버십 서비스인 ‘와우멤버십’이었다. 쿠팡은 고객이 와우 멤버십 가입 시 쿠팡 무료배송과 함께 쿠팡이츠와 쿠팡플레이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했다. 공정위는 이 행위가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끼워팔기’에 해당하는지 조사 중이다.
공정거래법에따르면 한 시장에서 확보한 지배력을 다른 시장으로 확장해 그 시장을 잠식하는 행위를 독과점 남용 행위로 보고 규제한다.

이 조사는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등으로 구성된 ‘온라인플랫폼 이용자 불만 신고센터’가 쿠팡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신고센터 측은 쿠팡이 와우 멤버십 서비스를 내놓고 여러차례 가격을 올렸다는 점에 주목했다. 소비자들이 이용하지 않는 서비스를 끼워주며 요금을 인상한 뒤 다른 선택지는 제공하지 않는 행위가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쿠팡의 끼워팔기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 8월이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쿠팡의 끼워팔기에 대한 신고가 접수돼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힌 후 곧장 현장 조사를 진행됐다.

만약 조사와 심의를 거쳐 쿠팡의 행위가 위법성이 인정될 경우, 와우 멤버십과 함께 제공 되었던 두 서비스는 ‘분할 시정명령’이 나올 수 있고 이는 쿠팡의 점유율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쿠팡은 끼워팔기 문제가 아니더라도 공정위의 집중 조사 대상으로 꼽혀왔다. 지난 6월 공정위과징금 역사를 새롭게 경신하기도 했다. 당시 쿠팡은 검색 순위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우대했다며 공정위로부터 1,62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 쿠팡, 검색 순위 알고리즘 조작 이슈로 과징금 물기도
쿠팡은 또 2020년 10월 23일부터 11월 6일까지 자사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자체 브랜드(PB) 생수인 ‘탐사수’ 2L짜리 12개 묶음 상품을 최상단에 고정 배치했다.
그 결과, 원래 100위권 밖에 있던 이 상품은 검색 순위 1위로 상승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이 2019년 2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최소 6만4250개의 자사 상품(PB 상품 및 직매입 상품)을 이런 방식으로 상위에 노출시켜, 입점업체 21만 곳의 상품이 소비자의 선택 기회를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 측은 쿠팡이 인위적으로 검색 순위를 조정하면서 쿠팡의 직매입 상품과 중개상품 모두 평균 판매가격이 올라갔고, 결국 소비자가 피해를 입게 됐다고 했다. 랭킹이 조작되니 일반 입점업체도 가격을 내릴 유인이 없고, 이미 상단에 노출된 쿠팡 PB도 인하 압력이 없어서다. 공정위는 이런 행위가 시장 지배력 남용이라고 판단했으며, 이는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하고 경쟁사를 불리하게 만드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쿠팡이 받은 과징금은 2022년 네이버가 온라인 쇼핑 알고리즘을 조작해 받은 액수(267억원)의 여섯 배가 넘는다. 국내 유통업체 과징금으로 역대 최고액인 셈이다.
물론 쿠팡도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공정위 결정에 불복해 최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쿠팡은 지난 9월 5일 서울고등법원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앞서 공정위는 쿠팡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제재 내용을 담은 의결서를 발송했는데, 의결서에는 검색 알고리즘 조작과 임직원 리뷰를 통해 자체 브랜드(PB) 상품이 우수한 것처럼 소비자를 오인케 하고 구매를 유도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시정명령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쿠팡 측은 공정위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커머스 업계에서 특정 상품을 상단에 배치하는 것은 소비자 편익을 고려한 유통업의 관행이며 본질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사 직매입 상품이나 PB 상품을 상단에 노출한 것은 로켓배송 등 무료배송 서비스와 같은 혁신을 통해 고객 후생을 증진시킨 결과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쿠팡은 과징금 의결 당시 입장문을 통해 “전 세계 유례없이 ‘상품 진열’을 문제 삼아 지난해 국내 500대 기업 과징금 총액의 절반을 훌쩍 넘는 과도한 과징금과 형사고발까지 결정한 공정위의 형평 잃은 조치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면서 “행정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부당함을 적극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공정위가 문제 삼은 직매입 상품은 로켓배송을 위한 것으로 쿠팡이 매년 수십조원을 투자해 무료 반품까지 보장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쿠팡 랭킹은 품질 높고 저렴한 상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로, 배송비가 무료인 로켓배송 서비스 제품을 추천하는 게 당연하다는 반론이다. 쿠팡은 순리대로 대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문제는 공정위 제재와 이어지는 수사·재판 등으로 기업이 입는 비용과 이미지 타격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수년 가까이 이어지는 조사와 심의 과정에서 법률 대응비로만 수십 억원을 쓰는 건 불가피한 일”이라면서 “공정위의 따가운 시선 탓에 사업이 전체적으로 위축되는 점 역시 피할 수 없는 피해”라고 설명했다.

◇ 무신사, 타 플랫폼 입점제한?…공정위 현장조사 나서
그렇다고 공정위가 쿠팡만 노리는 것만은 아니다. 현재 무신사는 입점 업체들에 타 플랫폼 입점을 제한하는 조건을 강요했다는 혐의로 공정위가 현장조사까지 나섰다. 지난 8월 서울 성동구 무신사 본사에 조사관을 보내 입점 브랜드 계약서 등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무신사는 자사 입점 브랜드가 다른 경쟁 플랫폼과 거래하는 걸 부당하게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무신사는 입점 업체에 서면 합의 없이 다른 경쟁플랫폼에 진출할 수 없도록 하거나, 매출이 무신사에 집중되도록 가격과 재고를 관리하게 하는 등 조건을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러한 행위는 무신사의 행위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위는 무신사의 행위가 멀티호밍 제한, 최혜 대우 요구에 해당하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멀티호밍은 이용자가 한 플랫폼에서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거나 동시에 여러 플랫폼을 사용하는 현상을 뜻한다. 서버 한 대로 두 개 이상 도메인 호스트를 지원하는 멀티 호스팅·노딩에서 유래한 IT 업계의 용어다.
통상 플랫폼 기업은 이용자들의 멀티호밍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데 이는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확보해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행위는 법에 어긋날 수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에서 멀티호밍 제한 및 최혜 대우 요구를 경쟁 제한 행위로 명확히 규정한 바 있다.

멀티호밍 제한은 입점 업체 등 이용자가 다른 경쟁사 플랫폼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행태를 의미한다. 공정위가 제시한 관련 사례로는 네이버 부동산이 부동산정보 업체에게 경쟁사 플랫폼을 이용하지 말라는 계약조건을 걸거나, 구글이 경쟁 업체의 운영체제 개발과 출시를 방해한 행위 등이 있다. 무신사의 행위에 대해 공정위가 멀티호밍을 제한했다는 판단을 내린다면, 무신사 역시 이미지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무신사는 공정위의 조사를 받고 있지만, 동시에 다른 기업이 부린 경쟁 제한 행위 따른 피해를 입었고, 이를 이유로 피해자 입장에서 조사를 받고 있기도 하다. 상대는 CJ올리브영이다. 공정위는 최근 서울 용산구 CJ올리브영 본사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공정위는 납품업체 계약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납품업체에 갑질을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CJ올리브영 조사에 나섰다. 올리브영은 무신사의 ‘뷰티 페스타’에 참여하려는 납품 브랜드에게 불참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앞서 올리브영은 지난해 12월에도 경쟁사의 판촉 행사에 참여하지 않도록 납품업체를 압박한 의혹과 관련해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 및 1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바 있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준법경영 추진 및 업계 상생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협력사 관련 논란이 제기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관련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고 필요한 조치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취하겠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인 롯데마트도 공정위의 칼 끝 서있는 상황이다. 공정위는 최근 롯데마트에 대한 현장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롯데마트가 유업체인 빙그레와 파스퇴르에 판촉비용을 떠넘겼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업계는 이번 조사가 롯데마트가 유업체에게 판촉비용을 부당하게 부담시켰다는 의혹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대규모유통업자가 납품업체와 공동으로 판촉행사를 진행할 경우 판촉비용의 최소 50% 이상을 분담해야 한다.
공정위는 롯데마트가 이를 무시하고, 판촉비용을 납품업체에 전가해온 점을 들여다보고 있다. 홈플러스 역시 비슷한 의혹으로 공정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 홈플러스가 판촉 행사를 진행하면서 납품업체와 협의 없이 판촉비를 강제로 부담시켰는지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알리익스프레스등 상위 40개 전자상거래 실태조사 착수
공정위는 현재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른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과징금 상한을 기존 5억원에 서 10억원으로 두 배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판촉비용을 부당하게 전가하는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만약 이런 불공정 거래 관행이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고 있다고 판단될 경우,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의 칼날은 특정 업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 7월부턴 유통업계 전반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현재 공정위는 네이버, 쿠팡, 알리익스프레스, 당근마켓 등 상위 40개 전자상거래 쇼핑 브랜드를 대상으로 서면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갈수록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전자상거래 부문의 시장구조 분석이 목적이다.
법률 위반 여부에 대한 사건 조사와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결과에 따라 어떤 후폭풍이 불어닥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이런 조사는 특히 대형 유통업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들의 거래 관행을 조사함으로써 불공정 거래를 근절하려는 목적이 보인다”면서 “공정위의 규제 강화 의지를 명확히 보여주며, 유통업계 전반에 걸친 구조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활약은 이 뿐만이 아니다. 공정위는 유통업계 전반의 불공정 거래를 막기 위해 법적 규제 강화도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의 도입이 대표적 사례다.
대규모유통업법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납품업체와의 거래에서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규제하는 법안으로, 중소 납품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를 가지고 있다. 온플법은 온라인플랫폼 기업들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제재하는 법안으로, 소비자와 소규모 사업자 보호를 목표로 한다.

공정위는 최근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마련한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초안도 공개했다. 문제의 핵심은 티메프가 판매대금을 마음대로 유용한 점이었는데, 개정안은 기존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만을 대상으로 하던 대규모유통업법의 적용 대상을 일정 규모 이상의 이커머스 업체로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번 법안은 이커머스 업체들이 판매대금을 30일 이내에 정산하도록 기한을 단축했다. 공정위는 ‘구매 확정일로부터 10~20일 이내’와 ‘월 마감일부터 30일 이내’ 중 하나를 선택할 계획이다. 이는 기존 대규모유통업법에서 정한 ‘월 판매 마감일로부터 40일 이내’보다 까다로운 규제다. 또한, 이커머스 업체가 판매대금을 직접 수령할 경우, 제3의 기관을 통한 예치나 지급보증 등을 통해 판매대금을 별도로 관리하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다만 공정위는 판매대금의 100%를 별도 관리할지, 50%만 적용할지를 두고는 논의 중이다.
공정위가 조사에 적극성을 띠는 건 시장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유통업계는 공정위의 강력한 규제에 맞서 다양한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내부 규정을 강화하고, 납품업체와의 거래 관계에서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을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정위 출신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현상도 볼 수 있다.
유통업계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기업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은 법적 규제가 강화될수록 비용 증가와 경영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 공정거래위원회, 5년간 총 393건 소송 중 357건 승소
글로벌 경쟁 당국과 비교해 봤을 때 공정위의 권한이 너무 세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령 미국에서 공정위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관으론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있다. FTC 역시 독점과 불공정 경쟁 행위를 규제하고, 주된 목표는 소비자 보호와 시장 경쟁 촉진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언뜻 FTC와 공정위가 비슷해 보이지만 미국은 시장 경제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으며, 규제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면서 “FTC는 자율 규제를 중시하며, 기업들이 스스로 경쟁 규칙을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고 설명했다.
FTC 역시 아마존, 구글과 같은 빅테크 기업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그 결과는 다소 시간이 걸리고 복잡한 법적 절차에 의해 조율된다. 이는 미국의 규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보다는 법적 절차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공정위는 다르다. 빠르게 조사에 돌입해 결과를 내고, 과징금까지 매기지만 순순히 과징금을 부과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대부분이 소송에 돌입한다. 공정위가 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지는 경우도 있다.
공정위는 최근 5년간(2020년~2024년) 총 393건의 소송 중 357건(일부승소 포함)을 승소해 행정소송 건수 기준으로도 90.8%의 승소율을 보였다. 10건 중 1건은 지기도 한다는 얘기다. 가장 최근엔 SPC그룹이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부과받은 647억원의 과징금 등이 대법원에서 최종 취소됐다.
유통업계 관계자는“유통업체는 대부분 B2C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가 너무나도 중요한데,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으면 나쁜 기업 이미지가 찍히는 걸 피할 수 없다”면서 “시장의 공정한 거래도 중요하긴 하지만 더 신중하게 위법 여부를 판단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앞으로 공정위와 유통업계의 관계는 더 복잡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커머스의 등장으로 유통업계 생태계가 다양해졌고, 기존의 법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사례들도 늘어나고 있어서다. 공정위는 유통업체들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더 강하게 규제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