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5월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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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펀드, 착한 임대료 운동 외면한 채 임대료 압박

공적 기금으로 건물 매입한 자산운용사, 소상공인 고충 나 몰라라

명동·홍대·강남역 등 코로나19가 휩쓸고 있는 거리엔 사람의 발길이 뚝 끊겼다. 점심시간이면 문전성시를 이루던 오피스 상권에도,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에도 인적이 드물어 진지 오래다. 수많은 회사가 재택근무로 전환했고, 비행길이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는 오프라인 상권을 크게 위축시켰다. 곳곳에서는 소상공인들의 곡소리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들에게 가장 큰 부담은 고정비 지출이다. 특히 몇 년간 치솟았던 서울 주요 상권의 임대료를 그대로 내야하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서울 중구 명동의 중심가 상가 1층 3.3㎡(약 1평)의 임대료 (2020년 4분기 기준)는 240만원이다. 100평짜리 상가를 운영한다고 가정하면, 2억4000만원을 월세로 내야하는 셈이다.

매출이 대폭 감소한 상황에서 고정비를 감당하느라 빚까지 진 소상공인들에겐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 임대료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면 줄 폐업 사태로 번질 게 뻔했다. 정부 역시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대표적인 게 ‘착한 임대인 운동’이다. 지난해 정부는 임대인들이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낮춰주면 세제혜택(임대료 인하액의 50% 세액공제)을 주는 방식으로 ‘착한 임대인’캠페인을 벌여왔다. 자영업자의 숨통을 트여주겠다는 취지에 굴지의 대기업도 동참했다.

가령 대형 복합쇼핑몰을 운영 중인 신세계프라퍼티와 롯데자산개발(롯데쇼핑에 합병)은 중소 입점업체의 임대료 일부를 인하 조정했다. 지난해 10월 말 기준 착한 임대인 운동의 수혜 점포는 4만2977곳에 그쳤지만, 건물주의 자발적인 ‘선의’에 기댄 정책이란 점에선 적지 않은 성과다.

◇ 자산운용사, 소상공인 임대료 납부 독촉하고 압류로 압박

국민연금이 출자자로 나선 이지스자산운용 의 펀드가 보유한 일부 부동산(사진 서울 눈스퀘어) 은 소상공인들을 위해 임대료 감면 혜택을 주지 않거 나 뒤늦게 동참하는 등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운동에 엉뚱하게 소외된 중소상인들도 있다. 오프라인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A 대표의 사연을 들어 보면 더욱 확연하다. 지난해 서울을 중심으로 착한 임대인 운동이 벌어질 때 A대표 역시 임대료 인하가 절실했다. 매달 수 억원에 달하던 매출이 10분의 1 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서울의 중심 상권이다 보니 임대료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해당 건물주는 임대료 인하는 커녕 일부 임대료가 밀리기라도 하면 바로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때 A 대표는 건물주가 정확하게 누군지 알 수 없어 읍소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처음 임대차 계약 시에도 건물주가 아닌 위임받은 건물 관리 회사가 자리에 대신 왔기 때문에 건물주는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직접 건물 등기부등본을 떼 본 결과 대형 자산운용사의 이름이 보였다고 말했다. 바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지스자산운용이다. 건물주가 이지스자산운용인데다 더 의아했던 것은 이지스자산운용이 해당 건물 매입 시에 조성한 펀드의 주요 투자자가 바로 국민연금, 군인공제화와 같은 공적자금이라는 것이다.

A 대표의 사연은 좀 더 들여 다 보면 아래와 같다. 2019년 중순경 A씨는 서울 주요 상권에 위치한 한 대형건물의 상층부에 고정 임대료 방식으로 계약하기로 했다. 수개월 뒤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이 덮칠 것이라 곤 상상도 못한 채 당시에는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했었다.

임대차 계약서엔 건물주인 이지스자산운용의 이름이 들어가 있긴 했지만 계약 시 상담 주체는 외국계 부동산 컨설팅회사였다. 이 회사가내민 계약서는 전부 일일이 읽어 보기도 힘들 정도로 백과사전처럼 두꺼웠다. 해당 외국계 부동산 컨설팅회사는 A대표와 입점 계약을 맺기 위해 프레젠테이션까지 진행했다. 이들은 현란한 프레젠테이션으로 A 대표는 해당 건물에 대한 장밋빛 미래를 연상케 했다.

이후 정식 계약을 한 후 영업을 시작한 초반에는 외국계 부동산 컨성팅회사가 설명한 대로 매출이 오르며 순조로운 영업이 펼쳐졌다. 그러다 곧 코로나19와 맞닥뜨렸다. 매출이 곤두박질쳤고, 인건비를 생각하면 영업을 중단하는 게 오히려 나은 상황이 초래됐다. 하지만 가게 문을 닫아도 수천만원에 이르는 월 임대료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코로나19가 시간이 갈수록 잠잠해지기는커녕 확산 일로로 치닫자 결국 A 대표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다.

A 대표는 “코로나19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은 수년 간의 계약을 유지한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면서 “수억원의 보증금을 날리더라도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약서 상엔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는 데 따른 페널티가 너무 컸다. 결국 A 대표는 속절없이 임대료가 계속 밀리게 됐고, 부동산 관리회사로부터 내용증명이 날아들었다. 밀린 임대료에 이자까지 합산해 부과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매장 매출도 압류하겠다는 압박까지 가해 온 것이다.

A 대표가 금전적·심리적으로 압박을 받는 사이, 주변 상가들은 ‘착한 임대인 운동’의 혜택을 받았다. ‘월세 인하’가 아닌 아예 1~3개월 정도 월세를 면제받는 가게도 있었다. A 대표를 더욱 난감하게 한 건 이런 상황을 조율할 상대마저 불분명했다는 점이다. A 대표 역시 임대료 인하를 두고 부동산 관리 대행 회사인 외국계 부동산 컨설팅회사에 사정해 봤지만 이들은 건물주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인지 임대료를 인하하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결국 A 대표가 직접 등기부동본을 떼 확인한 해당 건물의 진짜 주인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펀드였다. 또한 이지스자산운용의 해당 펀드의 주요 출자자 명단에는 바로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같은 공적자금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것이다.

◇ 국민연금과 자산운용사, 왜 착한 임대인 운동 외면 하나?

정부는 착한 임대인 운동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A 대표는 억울한 심정이 들었다. 정부가 앞에선 임차인의 마음을 위로하겠다면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정부기관인 국민연금이 돈을 댄 건물에선 착한 임대인 운동은 커녕 내용증명으로 임차인을 압박하고 있는 이유 때문이다. 이는 국민연금이 기금투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에 충분한 사례다.

국민연금의 돈으로 매입한 건물이 A대표의 브랜드가 입점한 건물만 있는 게 아니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펀드(자산운용사)가 보유한 건물의 경우 A 대표처럼 임대료 인하 조치를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물주의 이름은 자산운용사, 건물관리회사의 이름은 외국계 부동산 컨설팅회 사이다. 그리고 건물주인 자산운용사(건물주)가 건물을 매입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펀드)은 상당 부분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자금이 투입된다.

이처럼 건물을 관리하고 건물에 대한 문제 발생 시 책임을 지는 데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는 복잡한 구조가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외면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또한 펀드는 건물을 소유할 경우 오랜 기간 갖고 있지 못한다. 펀드는 평균 3년이라는 짧은 운영 기간 내에 건물의 가치를 올려 되팔아 수익을 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대료 인하가 바로 건물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 펀드는 섣불리 임대료 인하를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건물을 장기적으로 보유하면서 임차인과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일반적인 건물주와는 다른 것이다.

이처럼 건물주가 명확하지 않은 건물의 경우 임차인의 어려움이 전달될 곳이 사라지게 되고 이로 인해 코로나로 인해 착한임대료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국민이 낸 기금으로 매입한 건물주가 자신의 주인인 국민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는 꼴인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2020년 부동산 펀드를 설정한 국내 자산운용사 중 이지스자산운용의 설정액 규모가 가장 컸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지난해말까지 설정액 15조 7441억원을 기록한 것. 2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8조 1950억원과 그 이하 자산운용사들과의 큰 격차를 벌이며 독주하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상업과 주거, 주상복합 등 다양한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 자산운용사 소유 건물 상당수 착한임대료 운동 외면

이지스자산운용이 부동산공모펀드 ‘이지스리테일부동산투자신탁 299호’를 모집해 성공적으로 매입 완료한 서울 종로구 대학로 상가 빌딩.

국민연금법에 명시된 기금 운영 원칙 중엔 다음과 같은 게 있다.

‘기금을 관리·운용하는 경우에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증대를 위해 투자대상과 관련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의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

투자를 할 때 수익만 보는 게 아니라 공공성도 고려한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이 우리나라 2200만 가입자의 노후자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행동강령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상업 시설, 오피스텔, 주거 등 부동산 자산에 대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2018년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요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만드는 의결권 행사 지침이다. 취지는 주인 대신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기관투자자도 고객의 돈을 소중히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연금이 자신이 투자한 건물에 대해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하라고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정부 캠페인에 가장 적극적으로 임대료 감면에 나선 건 국유재산·공공기관이 소유한 부동산(상가)이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임대료를 내리는 만큼 기대 수익률이 훼손되기 때문에 주인이 여럿인 펀드가 보유한 부동산 임대료를 내리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수익률을 얻는 주체가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한다는 취지로 설립된 국민연금이라면 다르다.수익을 얻겠다고 국민 중 한명인 임차인을 쥐어짜는 셈이니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잘못된 모습으로 충분히 느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국내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로 부동산 펀드 설정액만 지난해 기준 15조 7441억원이다.

건물에 투자하는 국민연금기금의 지난해 전체 수익률은 9.7%에 달한다. 수익금은 72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수익금 규모는 국내 상장 시가총액 최상위 기업인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의 2배 수준이다. 건물주인 이지스자산운용 역시 지난해 대박 실적을 냈다. 2020년 매출 1349억원, 영업이익 374억원, 당기순이익 41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38.2%,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26.5%, 45.2% 늘어난 수치다.

이처럼 두 거대 기관이 큰 폭의 수익을 내는 동안 A 대표처럼 두 기관이 소유한 건물에서 장사하는 일부 소상공인들은 현재 막대한 빚을 안고 오프라인 사업 철수나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국민이 낸 돈으로 운영되는 국민연금과 그 기금을 활용해 건물을 매입한 자산운용사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회피함으로써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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